2020.12 Vol. 5
한강과 세느강 중 어느 것이 큰가?
염 형 철
국가물관리위원회 간사 /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제가 자주하는 질문입니다. 길이는 세느강이 776km 한강이 494km, 유역면적은 세느강이 78,700㎢ 한강이 34,473㎢. 그런데 강폭은 한강이 서울을 지나면서 1km가 넘는 반면, 세느강은 하류에 가서도 3-400m를 넘지 못합니다. 어느 기준으로 판단할지에 따라 선택은 분명한데, 결과는 서로 다른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는 최대 가뭄 시와 최대 홍수 시의 수량 차이를 비교한 하상계수가 원인입니다. 세느강은 하상계수가 10(배)인데, 한강은 380(배)에 달하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강은 홍수기가 격렬하고, 폭이 엄청 넓고, 환승이 어려워 운하로 이용이 곤란합니다. 그러다보니 하천부지는 국토의 5%에 달할 정도입니다. 서울의 경우엔 면적의 10.3%가 하천부지입니다.
우리 강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홍수관리와 용수공급의 측면에서 어려움을 주지만, 반대로 넓은 공유지를 보전하게 된 것이죠. 다른 나라에는 없는 기회가 우리 강의 특징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회는 현실에서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넓은 공간은,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생산성이 높아야 할 그 강은, 극히 황폐한 채로 남겨져 있습니다. 홍수를 막고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으로 직강화하고, 식생을 제거하고, 댐과 보들을 세우고, 호소로 변형한 채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은 ‘물이 흐르는 선(線)이고, 홍수를 방어해야 하는 제방이고, 수자원을 공급하는 시설’입니다. 이는 하천법(2조 1항)이 정의하는 ‘국가하천 또는 지방하천으로 지정된 물길, 하천 부지, 시설’이라는 규정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강은 산지가 아닌 국토의 1/7(국토의 5%)에 해당하는 면적이고, 홍수기 외에는 비어있는 공간입니다. 34,000개의 댐과 보로 만든 호소 면적을 포함해, 거의 무한대의 수변과 둔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강을 전체로 살펴보고, 강을 걸어보자고 합니다. 그곳엔 물도 흐르지만, 모래도 흐르고, 버드나무가 자라고, 꾸구리가 헤엄치고, 고라니가 뛰고, 해오라기가 날고, 어부들이 작업하고, 시민들이 산책하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거대한 생태계이자 생활공간입니다. 이수, 치수 같은 요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이고 유역민들의 삶과 문화가 있는 지역입니다. 좁은 국토라고 할 게 아니라, 이 넓은 강을 생태축으로 가꾸고, 문화의 장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국토의 가치를 높이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죠.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457개의 수변공원, 17개의 강 문화관과 홍보관, 58개의 나루터, 978km의 자전거길을 세운 4대강 사업입니다. 아쉽게도 지금 이 시설들 중에 가동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국토교통부가 강의 역사-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며 2010년 시작한 ‘고향의 강’ 사업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역사도 문화도 생태계 복원도 없는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추진했던 강변 문화관광 개발계획도 있었습니다. 총 1,675억원을 투입하여 36개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기억되는 곳조차 없습니다. 환경부도 ‘도랑 및 실개천 살리기 선도사업’을 했습니다. 강의 생태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역시 별로 존재감이 없습니다. 지자체들마다 만들어 내는 체육공원과 산책로 등을 설치하는데, 이들이 대안적인 강 이용이라는 인식을 얻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 사업들이 왜 생명력을 가질 수 없었을까요? 저는 강의 고유성, 역사성, 장소성, 유역의 공동체성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 강이 가진 특징과 자연성을 회복하기는커녕 왜곡시켰기 때문에, 과도한 관리 비용과 환경의 역습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또한 천편일률적인 시설만 조성했을 뿐, 지역들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매력을 끌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과학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여주 강천보에 있는 한강문화관에 가서 배우라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성공할 리 없습니다.
지역의 발전과 공동체의 성숙에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외면받게 된 것입니다. 축제와 교육도 좋지만, 이걸 365일 동안 강에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며칠 하는 관광형의 축제들에 지역의 특성이 살아나기도 힘들고, 번잡한 행사를 주민들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강문화는 무엇일까요? 아직 강문화라는 개념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없습니다. <물관리기본법> 제35조에서 비슷하게 ‘물문화’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물순환 및 물관리 등에 대한 지식 보급’으로 소개되고 있고, 혹자는 강을 이용한 영화제, 미술제, 음악회,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매우 협소하게 이해합니다.
저는 강 문화를 강생태계서비스에 기반해 만들어진 문화라고 해석합니다. 세느강에는 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이 있고, 강가에 바짝 붙여 세운 성당과 건축들이 멋을 냅니다. 하지만 한강에는 화물선이 오가고, 수상택시를 운행케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반면 우거진 숲과 펼쳐진 모래밭에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강수욕을 하는 풍경은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습니다. 파리시가 여름마다 세느강에 수백 대의 모래를 부어 만든다는 백사장이 우리에게는 쉬운 일입니다. 지난 1960년대에 서울 한강 곳곳에서는 하루 10만이 넘는 인파가 강수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강문화는 남들의 강문화를 억지로 들여오는 게 아니라 우리 강의 특징을 살리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강문화란 ‘강의 고유성, 역사성, 장소성이 드러나고, 강의 생물학적 다양성과 인간의 문화적 다양성을 모두 확대할 수 있는 문화’라고 봅니다. 공유자원인 강 생태계를 유역 도시 및 지역 문화의 물리적 기초로 삼고, 강 생태계의 이용을 통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의 자연적인 흐름에 적응하면서 생물학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함께 확대하는 ‘강은 자유롭고 인간은 행복한 강문화’를 비전으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프랑스의 생태학자 Dr. Karl Matthias Wantzen는 “유역의 생물학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이 생태계 기능, 생물다양성, 어떤 종의 진화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결국 인간의 문화적 다양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2016)”는 주장을 했습니다. 우리가 강문화를 발전시키면 강생태계는 더욱 풍부하게 되고, 우리 사회는 다시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누가 이러한 강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지난 수십년간 강살리기 운동을 했던 이들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또한 하천을 개발 공간으로 보는 정부와 지자체들의 욕망을 자연성 회복과 바람직한 정책 방향으로 순화시켜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미 역량과 욕망은 충분하고, 새로운 모델과 시도가 부족할 뿐이라고 봅니다.
작은 시도지만, 제가 추진하고 있는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67693.html
서울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관리가 미흡했던 곳을, 시민들의 자원 활동과 기부 등을 통해 새롭게 바꿔가는 중입니다.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이 산책하는 공간이며, 자연을 학습하고, 시를 읽고, 시장을 열고, 인생의 이벤트들을 열 수 있는 곳으로 조성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전국 구석구석의 하천들이 살아나, 시민들이 놀고, 쉬고,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강은 살아나고 사람들은 행복한, ‘강생공락(江生共樂)’의 시대를 기대합니다.
우리나라는 ‘강’의 나라
김 선 희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 /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봄 비 개이고, 석류꽃 갓 피어난 어느 봄날 다산 정약용선생님은 고향 능내 앞을 흐르는 초천의 쪽빛 강물이 그리워 흙먼지 나는 한양의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초천에서 놀다온 풍경을 유천진암기(遊天眞菴記,1797)에 남겼다. 2010년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은 개성 시내 도처에 시냇물이 그물처럼 정갈하게 흘러, 물장난 삼아 삼태기로 보리새우를 하나 가득 잡아 아욱된장국을 구수하고 달착지근하게 끓여 먹던 일을 회고하시면서, 시냇물은 아이들의 ‘물장난 놀이터’, 여자들의 부엌살림을 풍요롭게 하는 ‘생활의 장’이었다고 표현하신바 있다(내가 잃은 동산, 1994).
강은 이처럼 그리움과 문학예술, 풍류의 생산지였다. 200년 넘는 후세에 까지도 우리 국토와 더불어 아름다운 글과 시를 남기는 문화가 흐르는 생산기지이다.
여러 문학작품에서 표현되고 있듯, 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강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강의 나라이다.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이 총3,893개소(총연장 30,233km), 소하천이 22,664개소(총연장 35,815km) 등 크고 작은 강이 29,000여개에 달한다. 국가하천을 골격으로 지방하천과 소하천이 실핏줄처럼 전국 방방곡곡을 흐른다. 현재 4대강 본류를 끼고 있는 시군은 5개 대도시, 20개 중소도시, 19개군 등 총 44개 시군으로 전국 인구의 약 55%인 2,712만인에 이른다. 이처럼 우리의 도시와 마을에는 예외없이 강과 하천이 흐른다. 큰 강은 대도시를 흐르고, 작은 강은 중소도시와 농산어촌을 흐른다. 서울에는 한강이 흐르고, 부산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세종, 공주, 부여에는 금강이 흐르고, 광주, 나주에는 영산강이 흐른다. 대구는 금호강과 신천, 대구천과 달서천이 흐른다. 울산에는 태화강이 흐르고, 춘천에는 소양강이 흐른다. 청주에는 무심천이 흐르고, 수원은 수원천이 흐르고, 안양은 안양천이 흐른다. 정선읍내는 푸르고 푸른 옥빛의 조양강이 흐른다. 유유히 흐르는 강과 강 건너 논, 밭아래 작은 마을, 그리고 먼 산, 이처럼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도시들은 산과 들과 마을과 강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광을 지녔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동요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실핏줄처럼 형성된 강을 따라 정주체계를 형성해 왔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풍수지리관을 통해 산과 하천을 중심으로 물과 바람과 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조화시키는 공간 이용틀을 갖고 있다. 동네를 의미하는 ‘동(洞)’이 ‘물(水)이 같은(同) 곳의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도 ‘유역공동체’ 정주체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물을 사용하는 영역, 즉 작은 유역(watershed) 단위의 공간 규모 형성에 있어 강이 공간 계획의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여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을을 품고 있는 강을 중심으로 지역자원을 효율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는 방법, 즉 생태적인 정주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선조들의 지혜와 결합하여 오랜 기간을 통해 후대로 전승되어 왔다.
지역의 생활·역사·문화를 아우르는 지문, 강
전통적으로 강은 지역 생활과 지역문화․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치수와 이수, 친수 등의 기능을 수행해 오고 있다. 지역내 우수와 오수의 원활한 배제를 통한 안전한 도시관리 인프라이면서, 도시생태계의 건전성과 순환성을 확보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사회의 역사․문화의 기반이 된다. 이처럼 강과 그 지류의 전체적인 구조는 그 지역의 생활과 역사·문화를 아우르는 지문같은 것이다. 인류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이래 강의 혜택에 의존해 오고 있다. 강이 상류로부터 운반해 준 풍요로운 충적층에서 어업이나 주운에 종사하면서 반농반어의 생활을 영위해 왔다. 또한 일상이 강에서 떨어진 장소에서 생활하는 일반사람들에게도 강은 낚시, 뱃놀이, 유람, 산책 등의 장소로서 강은 ‘생활의 장’ 그 자체였다. 이처럼 강은 과거로부터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공간이다. 민물과 풍부한 식량자원을 제공하는 젖줄이고, 사람과 문명, 물자를 실어 날으는 자연 고속도로이자 여가 공간이다.
강은 소위 생명체의 모태로서 ‘어머니로서의 강’이라는 표현을 오래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사용해 오고 있다. 강은 또한 고대로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다. 고대부터 근대 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강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오고 있고, 때때로 내습하는 홍수도 자연 사이클의 일부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는 것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 홍수도 물의 신의 노여움이 가라앉으면 상류로부터 풍요로운 토양과 어류 등을 운반해 주는 은혜로움의 기회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강은 홍수가 나거나 얼어붙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2020년 여름 기상이변과 집중호우 등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강 주변지역들은 많은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처럼 강은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진 인간의 오랜 친구이므로, 정성을 다해 잘 관리하고 유지되어야 한다.
코로나19(COVID 19)로 모든 활동이 위축된 2020년에도 도시 곳곳을 흐르는 우리들의 강은 산책과 자전거 등을 탈 수 있는 건강회랑, 생태백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는 틈틈이 연구원 앞을 흐르는 금강변을 따라 걸으며 새와 꽃과 나무와 물을 보며 몸과 마음의 건강함과 평온함을 느낀다. 그렇게 이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다.
▲ 주 :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이 총 3,893개소, 총 연장은 30,233㎞(국토해양부)
소하천이 22,664개소, 총 연장은 35,815㎞(행정안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