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포커스

기고

박 석 현 한국수력원자력 수력운영실장

탄소중립에서 수력발전의 역할

박 석 현
한국수력원자력 수력운영실장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전세계 재생에너지의 90% 이상을 수력발전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재생에너지가 수력발전만을 의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는 풍력, 태양광 발전 등의 급속한 보급으로 수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60% 정도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재생에너지는 수력발전이다. 특히 호수가 많고, 강수량이 풍부한 북유럽이나 남미 등에서는 전체 전력생산의 80~90% 이상을 수력발전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전쟁 직후에 전력생산의 거의 대부분을 수력발전이 충당하고 있었다. 이후 급격한 산업화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다양한 발전원들이 개발되어 현재 우리나라 전력생산에서 수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1%로 급격히 낮아졌다. 수력발전은 풍력이나 태양광 등의 발전원들에 비해 개발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북한강에 화천댐부터 팔당댐까지 5개의 수력발전소를 계단형으로 건설하여 물을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지형적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세계 평균인 28.8%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30%로 확대하려면 매년 10GW 이상 설치해야 한다. 이번 정부 들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한 결과로 매년 설치한 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이 5GW이니 매년 그 2배 만큼을 신규로 설치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설치 목표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발전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함으로 인한 전력 계통의 불안정성이다.

우리나라 전기의 품질은 매년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전기의 품질을 평가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끊김 없이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는가?’와 ‘좋은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가?’로 설명할 수 있다. 풍력,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안정적이지 못하다. 기상상황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거나, 발전기의 출력 역시 오르락 내리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수력발전이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좋은 전기의 조건으로 안정적인 주파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60Hz의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많이 알려져있는 사실은 아니다 보니 안정적인 주파수가 왜 중요한지 의아한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모든 전자제품, 기계 등은 60Hz의 전기를 기준으로 생산되고 가동된다. 가전제품의 수명뿐 아니라 제조업의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나라 전자제품의 수명이 긴 것은 전기 품질이 좋은 덕도 클 것이다. 조건에 따라 발전기의 출력은 조금씩 변동할 수 있으며, 주파수를 조정하는 역할을 지금까지는 수력발전과 화력발전이 담당해 왔다. 수력발전은 발전기로 유입되는 물의 양을 조절하여 쉽게 출력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화력발전은 계속 줄어들 것이고, 재생에너지는 증가하게 될 것이다. 수력발전의 역할이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은 공급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반드시 에너지저장장치가 필요하다. 전기는 실시간으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켜야 한다. 일조량이 많거나 바람이 많이 불어 전기가 너무 많이 생산되어도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일조량이 너무 많은 날 일부 태양광 발전시설을 전력 계통에서 분리했던 사례가 있다. 즉 발전량이 많을 때는 그에 맞는 수요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발전량이 많을 때 전기의 수요처가 되어 전기를 저장했다가 발전량이 적을 때 전기의 공급처로 작동하는 것이 에너지저장장치이다. 작년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소요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만 최대 1,248조원이 필요하다는 기사가 나와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반박으로 낸 보도자료에 보면 ESS의 대안으로 수소생산과 양수발전을 들고 있다. 발전량이 많을 때는 양수기가 잉여전력의 수요처가 되어주고, 그 전력을 물의 위치에너지로 전환하여 저장하였다가 필요할 때 5분 이내로 최대출력을 낼 수 있는 양수발전이 현재로서는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로 기능한다. 지난 2월 신규양수발전소 3기가 동시에 예비타당성 평가를 통과한 것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시대에서 양수발전의 필요성을 증명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정리하면 수력발전은 현재도 전력공급과 품질의 안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특히 재생에너지가 증가할수록 그 역할과 기능이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수력발전은 과거 국가 전력망의 중추로 역할을 하였고, 첨두 부하 공급, 공급망 안정 등의 역할을 거쳐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담기는 그릇과 흐르는 물길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물과 같이 수력발전도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게 다시 한번 변화하고 성장할 거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