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이슈

물 따라 삶 따라, 역사 속 물 이야기

물은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연의 산물이다. 인체의 70%가량을 이루고 있는 성분이자,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 지각이 형성된 이래 지구 표면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해온 물은 증발-응축-강수를 반복하며 기후환경을 조성하고, 농작물의 생육을 돕는 등 지구 생태계와 인류문명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



물과 함께 성장해 온 민족


앞서 말한 것처럼 인류는 물을 중심으로 터전을 일궈왔다. 하천 주변의 땅은 비옥해서 농사가 잘되었고, 사람들은 여행과 수송 수단으로 강을 따라 펼쳐진 뱃길을 주로 이용했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레 마을이 만들어졌다.

사진설명 : 배산임수의 촌락 입지

▲ 배산임수의 촌락 입지


특히 오랜 기간 ‘수도경작(水稻耕作)*’의 비중이 높은 농경생활을 영위해 온 우리나라에서 물은 그 기능과 가치가 더욱 높았다. 그렇기에 민속신앙에서 물의 역할은 남달랐다. 생명력과 풍요의 원리였으며, 정화력으로 섬겨지는 등 종교적 기능까지 발휘했다.

* 수도경작 : 논에 물을 대어 벼를 심고 키워 재배하는 농사법.


우리에게는 전래동화로 익숙한 ‘별주부전*’을 예로 들어보자.
이야기에는 토끼와 자라 그리고 바닷속 세상을 다스리는 용왕이 등장한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용왕의 존재를 믿고, 수신(水神)이자, 농경의 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농부들은 강이나 못, 우물 등지에서 생활과 농사에 필요한 물이 풍족하기를 기원하면서 ‘용왕제**’라는 제의를 펼치기도 했다고.

* 별주부전 : 조선 후기의 판소리계 소설. 토끼의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 용왕을 위하여 육지로 나간 별주부
곧 자라가 토끼를 용궁에 데려오는 데는 성공하지만, 토끼가 간을 빼놓고 다닌다는 말로 잔꾀를 부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도망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용왕제 : 물을 관장하는 신, 용왕을 위한 제의. 마을마다 제를 올리는 장소가 몇 군데 있었지만, 점쟁이의 지시에  따라 샘이나 바위 등을 선택해 그곳에서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용왕제 (출처 : 디지털당진문화대전)

▲ 용왕제 (출처 : 디지털당진문화대전)

물의 소중함은 우물신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산간 지역처럼 물이 귀한 곳에 살거나 가뭄으로 물이 부족할 때면 마을 사람들은 어김없이 우물을 이용했다.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은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항상 좋은 물이 솟아나길 기원했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우물을 깨끗이 청소하고 지붕을 덮거나 금줄을 걸어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고, 우물을 고칠 때는 흙탕물이나 오물이 우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조심했으며 우물신에게 돼지나 소를 바치며 마을 사람들이 깨끗하고 좋은 물을 마실 수 있길 빌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은 신령의 집인 우물 역시 귀중한 존재로 여겼다. 신성한 우물에서 비롯한 ‘정화수’ 역시 음료가 아닌, 신앙 행위의 매체로 맑은 물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정화수가 신령과 인간 사이의 뜻이 오고 감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물 자체가 지닌 맑음으로 인해 환경이나 사람·물건의 부정을 물리치거나 막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부정이 탔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향해 그릇에 담은 정화수를 손가락 끝으로 세 번 흩뿌리는 것으로 정화 주술을 하기도 했다.



물과 민속놀이


선조들의 물에 대한 애정은 민속놀이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는 놀이가 있는데, 바로 물당기기. 생활용수가 부족했던 마을의 새로 판 우물에서 깨끗한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솟기를 기원하고, 또 물갈이를 한 공동 우물에서 지속적으로 양질의 물이 솟아날 것을 염원하는 전통 민속놀이다.

물당기기는 정월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줄에 물병과 솔잎을 단 후에 남녀노소가 함께 어깨에 메고 물 당기기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우물에서 물을 퍼 물병에 붓는 의식을 치르고, 올해에도 신성한 물이 샘솟기를 기원하며 한바탕 놀음을 펼친다.

사진설명 : 물 당기기 놀이(출처 : e영상역사관)

▲ 물 당기기 놀이 (출처 : e영상역사관)

물당기기는 제의 등 우물에 대한 성수 의식과 달리, 공동체적 의식으로 승화한 유일무이 놀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의가 있다. 신성하고 깨끗한 물이 쏟아져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염원이 놀이로 승화되었고, 마을 대대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민속화로 연결된 것이다. 현재 물당기기 놀이는 상수도 시설이 보급되면서 그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만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일찌감치 단순 식수의 개념을 넘어 문화적 특성을 갖는 산물로 자리매김한 물. 지역과 사회, 문화에 따라 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은 다양하나, 모든 생명체에게 꼭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구석구석 스미는 물은 앞으로도 영원히 인류와 함께할 것이다.


출처
· 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정화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천수신앙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립민속박물관|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편 – 용왕제
· 집과 마을을 지켜 주는 민속신앙 이야기 – 교과서 쏙 한국사 들여다보기08
· 울산역사문화대전|물당기기 놀이
· 디지털강릉문화대전|용물달기
· 한국문화원협회 |지역N문화 – 강에서 드리는 용궁맞이 의례, 어부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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