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운
“와~ 제주도도 아닌데… 이런 절경이 있었어요?”
한탄강을 처음 본 사람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인다. 난생처음 본 기묘한 풍경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이도 상당수이고, 수십만 년의 시간이 만든 풍경 앞에 그저 ‘와~’ 하는 탄성만 여러 번 내뱉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풍경이 기이하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탄강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화산 폭발로 형성된 강이다. 약 54만 년 전 평강 오리산 일대에서 폭발한 화산으로 분출한 용암이 한탄강을 채우면서, 지금과 같은 협곡과 수많은 절리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한탄강(136km)이 지나는 철원, 포천, 연천 땅 전부에 기기묘묘한 풍경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포천 땅에 독특한 풍광 여러 개를 빚어 놓았다. 비둘기낭을 비롯한 대교천현무암협곡, 아우라지 베개용암 등 천연기념물 3곳과 화적연, 멍우리협곡 등 명승 2곳이 대표적이다. 대회산천 하류에 자리한 비둘기낭은 비췻빛 소(沼)와 하얀 포말이 이는 폭포가 신비감을 더하는 곳이고, 대교천현무암협곡은 포댓자루가 켜켜이 쌓인 듯 오묘한 절리가 돋보이는 곳이다. 둥근 베개 형태의 지형을 이룬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볏단을 쌓아놓은 것 같은 화적연, 수직으로 주상절리가 발달해 풍광이 수려한 멍우리협곡도 포천을 포천답게 하는 한탄강의 비경 중 하나이다.
포천시는 이 다섯 곳의 국가문화재에 교동가마소와 샘소, 구라이골 등의 지질 명소를 더해 ‘한탄 8경’을 지정했다. 현재 이들을 걸어 돌아보는 한탄강 주상절리길이 5개 코스로 조성돼 있고, 실제 걷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늘 적은 땡볕 구간이 제법 있어,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기엔 몇몇 곳만 콕 찍어 다녀오길 추천한다. 등골 오싹해지도록 시원한 비둘기낭과 풍경이 기묘해 저릿한 구라이골,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감상할 수 있는 화적연 세 곳이다. 특히 비둘기낭은 꼭 한 번 다녀오길 권한다.
비둘기 둥지처럼 움푹 파인 낭떠러지라는 뜻의 이름처럼 밖에서는 그저 숲만 보일 정도로 초록이 무성한데, 협곡 속을 파고들면 영롱한 빛깔의 소가 보여 신비롭다. 마치 동굴에 들어선 듯 시원한데다 현무암 협곡의 자태가 빼어나 오래 머물다 오기 좋다.
포천은 서울보다 북쪽에 위치한다. 차로 1시간여 거리에 불과하지만, 그 덕에 적게는 1~2°C, 많게는 3°C까지 기온 차가 난다. 그래서 여름엔 덜 덥고 겨울엔 더 춥다. 포천을 ‘수도권의 피서 명당’이라 칭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더하여 포천엔 백운계곡, 지장산계곡 등 물 맑고 수량 풍부한 계곡도 여러 군데라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이즈음엔 인파 북적대던 계곡이 보다 한산해져 찾아 즐기기에 더욱 좋다.
광덕산과 백운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백운계곡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계곡으로 유명하다. 선유담을 비롯한 광암정, 학소대, 금병암, 옥류대, 취선대, 금광폭포 등의 명소가 10여km에 걸쳐 이어지지만, 가장 돋보이는 점은 계곡의 수심과 물살의 세기이다. 수심이 적당해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물놀이 장소로 적합하고, 물살의 세기가 적정해 튜브를 타고 암반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스릴을 즐기기에 좋다.
물놀이 포인트는 크게 두 곳이다. 흥룡사 앞에 있는 메인 주차장을 기준으로, 서쪽 구간은 아이 동반 물놀이 장소로 제격이고, 동쪽 구간은 청소년 이상 성인들의 물놀이 장소로 인기 있다.
특히 주차장 인근에 조성된 중앙데크광장은 시민 테이블(무료 파라솔 세트) 60여 개가 설치돼 인기 만발인 곳. 이 중앙데크광장 상·하류 쪽으로 계곡을 따라 걸을 수 있는 1.2km 길이의 데크로드가 조성돼 있어 살랑살랑 걷기 좋다. 지난해 빅데이터로 ‘경기도 내 계곡 중 최고’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만큼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니, 찾아 즐겨볼 일이다.
백운계곡이 372번 지방도를 따라 길게 이어져 접근성이 좋은 계곡이라면, 지장산계곡은 심산유곡 같은 느낌의 피서지다. ‘지장냉골’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계곡물이 찬 것도 매력. 울창한 나무 숲 아래로 아담한 소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어디에나 자리 잡고 앉아 즐기기 좋다. 계곡욕 포인트는 향로천2교 근방. 지장산마을회관에서 1.2km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지장산계곡은 오른 만큼 더 빼어난 계곡미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최근에는 왕방산에서 시작되는 깊이울계곡과 관음산에서 발원한 관음산 계곡, 그리고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는 도마치계곡 등도 알음알음 찾는 이들이 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포천엔 숲도 많다. 국립수목원을 비롯해 규모가 큰 수목원과 식물원이 6곳 넘게 있다. 이중 유식물원이나 뷰식물원, 프로방스수목원 등은 야영장으로 운영 중이고, 허브아일랜드와 평강식물원, 포천하늘아래치유의숲은 각각 허브정원과 다양한 테마의 생태정원, 숲 체험 시설로 운영 중이다.
이 중 하루 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곳이 국립수목원과 평강식물원이다. 포천시 소흘읍에 있는 국립수목원은 국내 최대의 산림 보고로, 하늘에 닿을 듯 빽빽하게 차오른 나무들이 인상 깊다. 산책 포인트는 나무 데크를 따라 걷는 ‘숲생태관찰로’. 460여m에 불과한 길이지만 어느 곳보다 울창해 이 길에선 따가운 태양마저 은은한 조명처럼 그윽하다. 혹시라도 태양을 차단하는 데만 골몰했다면 이곳에서만큼은 모자를 벗어 숲을 지나는 바람의 결을 느껴볼 일.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텅 빈 마음’으로 바람을 맞는 기분이 제법 좋다.
평강식물원의 숲 그늘도 짙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의 무대로도 잘 알려진 평강식물원은 초록이 물감처럼 번져 풍경을 이룬 곳이다. 그중에서도 여름에 제철을 맞는 것은 물에서 자라는 습지식물들이다. 물과 뭍의 경계도 없이 자란 습지식물들이 초록으로 흐드러져 공간 전체가 다 푸를 지경이다. 그 초록 바람 좋은 숲 그늘 아래에서 까무룩 잠드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놓치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