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운
물 관리 이야기발을 딛고 있는 땅 아래, 거대한 바다가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순환하는 물의 양은 자그마치 지구촌 담수*(민물)의 30%. 지표수가 담수의 0.3~0.4%에 불과한 것을 볼 때,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나 눈, 우박 등의 강수가 땅으로 스며들어 만들어지는데, 우리는 이를 지하수라고 부른다.
* 담수 : 염분이 없어 짜지 않은 물. 사람이 마실 수 있고, 농업에도 쓰이는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지구에 있는 물은 염수(바닷물, 짠물) 97.5%, 담수 2.5%로 이뤄져 있다.
지구촌 담수 부존량
기후위기시대, 지하수의 필요성
유난히 덥고 습했던 이번 여름. 기상청의 여름철 기후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6월~8월 전국 평균기온은 24.7℃로 평년 23.7℃보다 1℃ 높았다. 이는 지난 1973년 이래 역대 4위 기록이다. 폭염일수는 역대 12위로 생각만큼 높지 않았지만, 관측 이후 가장 더웠던 2018년보다 습도가 높아 밤에도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 4월 최고기온이 31.0℃를 웃도는 등 이른 무더위가 찾아왔는가 하면, 남부지방에서는 6월부터 12월까지 기상 가뭄이 이어지면서 1974년 이후 가장 많은 가뭄일수(227.3일)를 기록했다. 그렇다. 모두 짐작하는 바와 같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다.
이처럼 지구온난화로 가뭄이 일상처럼 반복되면서 떠오른 수자원이 바로 지하수다. 땅속에 저장된 지하수는 온도나 수량의 급격한 변동이 적어 안정적인 데다, 자연적으로 재생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부족한 수자원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덕분에 최근 인류 생존을 위한 필수 자원이자 미래세대와 공유할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하수가 고갈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수자원 이용량을 보면 대부분 지표수가 차지하고 있다. 지하수 사용량은 전체의 1/10 정도다. 그런데도 지하수 고갈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지하수도 무한정 있는 게 아닌데다, 쓴 만큼 다시 채우는데 길면 800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과하게 사용할 경우, 지하수위 감소와 지표면의 변동까지 불러올 수 있어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21년 단위면적당 지하수 일 이용량
▲ 타 지역에 비해 제주도의 지하수 의존도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2022 지하수조사연보)
일례로 실제 제주도는 최근 지하수 부족 위기를 맞았다. 섬 지역은 지형적 특성상 용수의 대부분을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제주도 역시 지하수가 전체 수자원 이용량의 약 96%(제주도 통합물관리 기본계획 보고서, 2022)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는 2025년 상수도 시설용량을 일일 44만 4천㎥로 추산했으나, 수요는 50만 1천㎥에 달해 매일 용수 5만 7천㎥가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2030년 농업용수는 하루 133만 9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하루 20만 9천㎥ 규모의 용수가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위기 속에서 도민들은 제주도 지하수의 보존과 사용량 조절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가 지하수 고갈 위기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지하수위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제주도와 제주지하수연구센터에서 발표한 ‘2022년 지하수관측연보’에 따르면 제주지역의 평균 지하수위는 전년(2021년)보다 1.97m 감소한 13.54m로 측정됐다. 지하수위 감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요인으로는 편중된 강우, 지표면 증가로 인해 땅속으로 침투되는 빗물 감소 등 다양하다. 특히 이상기후가 겹치면서 강수량이 적어진 데 반해, 지하수 사용량이 증가한 것이 지하수 고갈 위기를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지하수 고갈은 제주도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서기원 교수 연구팀은 과한 지하수 이용이 지구 자전축 기울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0년 동안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사용되면서 해수면이 6.24mm가량 상승했는데, 이로 인한 지구상 질량의 변화가 자전축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해수면 상승을 일으키는 요인에 의한 자전축의 변화(1993-2010)
▲ (a) 빨강색 화살표 : 인간의 개입이 없을 때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자전축의 변화 (b) 빨강색 화살표 : 실제 자전축 변화 관측값 / 파랑색 화살표 : 자전축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
(출처 : Drift of Earth's Pole Confirms Groundwater Depletion as a Significant Contributor to Global Sea Level Rise 1993–2010(2023))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지하수가 추출되었기에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것일까. 무려 2,150 기가톤(GTon).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8억 6천만 개를 채우고도 남을 양이다. 이는 1993년부터 2010년 사이에 추출된 지하수의 양으로, 이후에도 계속 지하수가 사용되었기에 더 많은 양의 물이 바다로 흘러가 지구 자전축 변화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 길이 50m, 폭 25m, 깊이 최소 2m 이상
지하수가 오염되고 있다
지하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는 오염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지하수는 유속이 매우 느리기에 오염물질이 희석되어 원상태로 되돌아가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오염도를 정확히 측정하고 인위적으로 정화하기도 어렵다. 비료와 농약 등의 사용과 산업 활동에 따른 질산염 오염 문제는 물론,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가뭄 발생 등으로 지하수의 지속가능한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
시도별 지하수 수질 현황
▲ (출처 : 대한민국 국가지도집Ⅱ 2020)
이러한 지하수의 오염은 생태계의 불균형, 나아가 붕괴를 초래한다. 그리고 인간의 건강한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전에 방지하고 조기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지하수 정화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지금부터 지하수를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지하수 보존과 관리
소중한 생명수이자 미래에 당면할 물 위기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공공자원, 지하수. 정부는 일찌감치 지하수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정한 개발·이용을 도모하고, 지하수 오염을 예방하여 공공의 복리증진과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1996년 ‘1차 지하수관리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지하수관리기본계획은 지하수와 관련된 국가 최상위 계획으로, 1993년 지하수법이 제정된 이래 본격적인 정부의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난 6월, ‘4차 지하수관리기본계획(2022~2031)’ 수립 공고가 발표됐다. 이번 계획에는 ‘모두가 누리는 건강하고 안전한 지하수’라는 비전 아래 ‘지하수 수량·수질 통합관리 실현’을 목표로, 6대 분야별 추진전략과 18개 세부 과제가 담겼다.
‘모두가 누리는 건강하고 안전한 지하수’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대책 실현과 국민의 관심이 절실하다. 지하수의 고요한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참고자료]
· 환경부 누리집
· 국토교통부, 대한민국 국가지도집Ⅱ 2020-수자원의 분포 및 이용
· 충남보건환경연구원 먹는물검사팀, 충남 지역 지하수 수질특성 연구(2020)
· 한라일보, 2025년 ‘물 부족’ 제주, 위기 대비 어디까지…(2023)
· 제주일보, 제주 지하수 관정 70% 수위 하락…“변동 실태 관측·감시 지속해야”(2023)
· 사이언스 투데이, 지구의 숨겨진 물, 지하수의 중요성(2019)
· YTN, 더 삐딱해진 지구...우리가 쓴 지하수가 지구축을 흔들었다?(2023)
· Ki-Weon Seo 외 7인, Drift of Earth's Pole Confirms Groundwater Depletion as a Significant Contributor to Global Sea Level Rise 1993–201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