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운
물 관리 이야기파리의 문을 잘 열고 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센 강에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센 강은 파리의 심장을 파고든다. 길이 776km의 센 강은 부르고뉴 디종(Dijon)근처에서 발원해 트르와, 파리, 루앙을 거쳐 영불해협으로 빠져나간다. 철도 건설 이전에는 파리 교통로로 중심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파리 관광객이 앞다투어 향하는 목적지다.
파리를 상징하는 유서 깊은 건축물과 문화적 장소들은 대부분 센 강을 따라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센 강의 하늘과 물 사이에 존재하는 교량은 37개다. 이 가운데 4개는 센 강에 있는 두 개의 자연섬 가운데 하나인 생 루이섬에, 8개는 시테섬과 연결된다. 다리 위만 걸어도 파리의 근현대사와 파리지앵의 흔적이 발끝에 전해져 온다.
'예술의 다리'라는 별칭을 가진 보행자 전용 퐁데자르 다리, 가장 낮은 다리는 앵발리드 다리, 가장 크고 화려한 장식을 가진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배경으로 너무나 유명한 퐁네프 다리는 센 강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다리다.
이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좌우에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에펠탑과 샤요궁,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이 경쟁하듯 자태를 뽐낸다.
걷기 힘들다면 올라타는 수밖에! 파리에 왔다면 누구나 한 번쯤 타봐야 할 센 강 유람선이다.
장편소설의 축약본처럼 파리의 주요 명소를 편안하게 본다는 장점이 있다. 유람선의 종류가 다양해 여행 콘셉트에 맞게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바토무슈(Bateaux-Mouches)는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저렴한 가격이 장점. 바토 파리지앵은 개별 오디오가 가능하고, 브데뜨 드 파리, 야간 출발은 에펠탑 조명 쇼를 볼 수 있는 브데뜨 뒤 퐁 네프 등이 있다.
센 강 교통은 잘 조직되어 건축 자재를 운반하는 거대한 바지선이 유람선과 교차하며 가로지른다.
파리 안의 파리, 파리의 심장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우뚝 선 시떼섬과 센 강 건너 양쪽 주변 지역이다. 노트르담의 시작은 11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축조 기간만 180여 년. ‘프랑스 고딕 건축물의 최고 걸작’이라 평가받는 이곳은 1804년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행해졌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가 성당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800년이 넘도록 파리의 걸작이 타들어 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던 2019년 4월 15일. 전 세계인이 침묵과 슬픔에 잠겼던 날이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바라보며 복원공사 중이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한밤의 에펠탑도 진풍경이다. 파리지앵이 손꼽는 에펠탑 핫스폿만도 8곳.
결국 파리는 에펠탑을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사랑’이 아닐까.
처음 에펠탑이 세워졌을 때 ‘흉물스러운 철조물’이라 비난했던 시절을 기억은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일 터. 그만큼 에펠탑에 엮인 숫자도 다양하다. 1889년 3월 31일 완공한 에펠탑은 높이 324m, 무게 1만 100t, 꼭대기까지 1,665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2017년에는 3억 명의 방문객을 달성했고 매년 700만 명이 에펠탑의 매력에 빠진다.
7년마다 도색작업을 하는데 한 번 할 때 60t의 페인트가 필요하단다.
2만여 개의 전구가 반짝이는 야경을 보노라면 동화 속으로 걸어가는 몽환과 낭만, 이상과 꿈 어디쯤에 있는지 모를 감흥을 느끼게 된다. 겨울이면 에펠탑에 아이스링크가 설치되는데 구스타프 에펠은 세밀한 격자무늬 철골 사이에서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탈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싶다. 어쩌면 그 이상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파리는 1870년 건축가 오스만의 진두지휘 아래 넓은 대로가 힘차게 뻗어 위엄을 과시하고, 화려한 건축물로 장식하는 완벽한 파리로 변했다.
‘새로운 예술(Art Nouveau)’을 통해 경제적 풍요는 물론 영혼까지 평안했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우리는 ‘벨 에포크 (La belle Epoque)’ 즉, 아름다운 시대라 일컫는다.
이 벨에포크의 중심에 우뚝 선 ‘파리의 위엄’이 있으니 바로 개선문이다. 에펠탑이 파리의 여성미를 한껏 뽐낸다면 개선문은 남성미 그 자체. 거대한 열두 개 도로가 교차하는 중심에서 유연하면서 굳건한 뿌리를 내린다. 파리 개선문은 45m 너비에 51m 높이로 평양 개선문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문이다.
1836년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건축했는데 나폴레옹은 그 완성을 보지 못했다.
파리 여행에서 ‘시간이 없다고’ 박물관을 뒤로 미뤘다면 그건 생애 치명적 실수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적 명성과 역사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파리 박물관이 가진 상징성 하나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곳이기 때문.
‘파리 안의 또 다른 도시’라 느껴지는 ‘루브르 박물관’은 결국 파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모든 이유를 응집해두었다. 사람들의 발길은 ‘모나리자’를 향해 걸어간다. 모나리자를 향한 사람들의 모습도 이 시대의 또 다른 작품이다.
오르세 미술관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빈센트 반 고흐, 끌로드 모네, 폴 고갱, 에드가 드가 등 몽마르뜨를 사랑했던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화가들의 작품이 모두 모여있다.
센 강은 세상에서 가장 긴 서점을 관통하며 흐른다. 3km 길이에 30여만 권들의 책들로 채워진 길거리 책방이다. 노트르담 성당이 위치한 시떼섬부터 오르세 미술관에 이르는 길에 280여 개의 초록색 매대가 줄지어 책 주인을 기다린다.
파리의 예술이 텍스트로 살아있는 곳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알퐁스 도데, 샤르티에가 얼굴을 내밀고, 결국은 이름 불리지 못한 무명작가의 문장도 뒷짐 지고 있다.
“젊은 시절 한 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는 행운이 그대에게 따라 준다면,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평생 당신 곁에 머물 것이다. 내게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
후루룩 넘긴 책장 끄트머리에 20대 헤밍웨이가 쓴 이 문장이 당신의 지갑을 열게 할지도 모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키니스트’는 매대의 주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역사는 4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퐁네프 다리가 1606년 완공된 이후 책을 팔던 행상인들은 다리 주변으로 노점을 형성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이전까지 귀족과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던 서적의 대중화에 힘입어 더욱 번성했고, 1900년 만국 박람회를 거쳐 새로 출판되는 책은 판매 불가, 일주일에 4일 문을 연다는 조건으로 자릿세와 세금은 내지 않는다. 유유히 흐르는 센 강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부키니스트 그 자체가 파리의 유산이다.
▲ ‘파리 노점상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키니스트. 각자 문을 여는 날과 시간이 달라서 때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