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운
‘밴쿠버,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1위’라는 수식어는 무뎌진 여행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캐나다 서남부에 있는 밴쿠버는 인구 약 260만 명으로 캐나다에서 토론토, 몬트리올 다음으로 큰 도시다. 광활한 캐나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륙횡단 철도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여서 늘 여행객으로 붐빈다. 그뿐이랴.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밴쿠버는 물과 인연이 깊다. 밴쿠버항은 1930년대 목재와 곡물을 나르는 가장 번성했던 항구였다. 그 명성은 현재 콜 하버 워터프론트에 정박한 대형 크루즈로 이어간다.
밴쿠버는 육지로 연결된 동쪽을 제외하고 모두 수변공간이다. 도시는 마치 ‘해안 둘레길’로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바다와 나란히 걷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선지 밴쿠버 시민에게 걷기는 일상이다. 잉글리시 베이, 키칠라노 비치, 제리코 비치, 로카르노 비치까지 원한다면 언제든 바다 곁에 머물 수 있다.
어디로 먼저 갈까 한다면 밴쿠버 도심과 그랜빌 브리지(Granville Bridge)로 연결된 그랜빌 아일랜드다. 자전거나 도보도 가능하지만 ‘섬’으로 향하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은 잉글리시 베이 선착장에서 미니 페리를 타는 것. 단 5분이면 도착한다. 16만㎡의 작은 섬은 오래전 인디언들의 터전이었다. 1920년대 밴쿠버 항의 급속한 발전으로 사람들은 펄스 크릭(False Creek) 지역을 메워 공업지역으로 변화시켰는데, 이곳은 산림, 광산, 조선업 등 해안 제재 산업의 중심지역으로 떠올랐다. 그러다 대공황과 전후 시기를 거치며 대다수 제재소가 간판을 내렸고 쇠퇴의 길을 걷는다. 버려진 공장과 오염된 환경으로 골칫거리 유령도시가 됐다.
반전은 지금부터. ‘수변 지역 도시재개발 계획’을 통해 정부와 시민은 합심해 회색 공장에 색을 입혔다. 말 그대로 ‘재생’, 그랜빌 아일랜드가 다시 살아났다. 당일 수확한 싱싱한 채소와 과일, 생선 등을 판매하는 퍼블릭 마켓(Public Market)은 이곳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알싸한 흙냄새의 여운, 노릇하게 갓 구운 빵 냄새를 어찌 지나칠까. 키즈 마켓과 아트클럽 극장, 각종 장신구와 공예품을 살 수 있는 다채로운 예술가들의 공방과 판매점,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 밴쿠버의 명문 에밀리 카(Emily Carr) 예술 학교 등이 리모델링되어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젠 연간 1,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밴쿠버의 랜드마크, 공존의 섬으로 향한다.
▲ 사진 설명: 그랜빌 아일랜드에는 밴쿠버 최고의 퍼블릭 마켓이 있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잉글리시 베이의 끝자락에 툭 튀어나온 공원, 스탠리파크는 400만㎡ 규모로 약 122만 평에 달한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스탠리파크는 아이의 심장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다. 과거 1859년 미국과의 전쟁을 대비한 군사기지였다가, 1888년 밴쿠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됐다. 태평양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공원의 남쪽은 ‘그림 같다’라는 말이 서운할 지경이다. 울창한 나무숲에 서면 피톤치드의 청량감이 극에 달한다. 숲과 바다가 만나는 최적의 장소에 9천여 종이 넘는 해양생물을 보유한 아쿠아리움도 있다. 요트클럽과 산책로, 자전거 도로 등 갖춰진 시설로도 ‘공공 정원’의 정석을 보여준다. 초록색 짙은 영화 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듯, 엔딩까지 완벽하다.
도심에서 페리로 20분 거리의 노스밴쿠버엔 캐필라노 호를 끼고 북서쪽에 자리 잡은 캐필라노 협곡이 기다린다. 연간 수십만 명이 넘는 여행자가 이곳을 찾는 첫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인 캐필라노 서스펜션 다리 때문.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촬영지기도 하다. 하늘에 닿을 것 같은 삼나무 사이로 협곡 아래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게 만든 클리프 워크, 답답한 가슴 뚫어줄 쭉 뻗은 전나무 아래 하이킹 코스는 이곳을 찾는 이유의 덤이다. 길이 137m 다리의 한가운데 서면, 태평양 연안 조지아 해협으로 세차게 흐르는 물길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살아 돌아올 가능성 3천 분의 1. 연어가 바다에 나가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올 확률이다. 그런데도 바다로 나가는 모험을 멈추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1954년 밴쿠버 시민들의 상수원 확보를 위해 캐필라노 협곡을 막고 클리블랜드 댐을 만들었다. 종종 인간의 ‘필요’는 자연의 ‘희생’을 요구했고, 댐은 수천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온 연어들의 길을 가로막아 섰다. 어미 연어는 ‘마지막 힘’을 쏟지도 못한 채 죽어야 했던 것. 이에 연방정부는 1971년 댐 바로 아래 인공부화장을 만들었다. 자연을 막아선 인간의 잘못을 깨달은 것일까? 잊지 않고 돌아온 연어들을 잡아 매년 부화 시킨 후 방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어 부화장에서는 건강한 연어를 선별해 채란 후 부화시키고 있으며, 방문객들은 연어가 어도로 소상하는 모습을 유리 벽을 통해 볼 수 있다. 치누크 연어는 10월에서 11월에, 코호 연어는 6월에서 11월, 새끼 코호는 연중 아무 때나 찾아볼 수 있다.
Travel Tip
끝없는 대륙의 발견, 캐나다 비아레일
캐나다를 동서로 관통하는 비아레일(VIA RAIL)은 기차여행의 로망을 가장 멋지게 실현해 주는 지상의 크루즈다. 4박 5일간 캐나다의 끝이 보이지 않는 대륙을 달리는 더 캐나디안(The Canadian) 호. 태평양 연안의 밴쿠버에서 장엄한 대륙을 가로질러 대서양 연안의 토론토까지 4,467km를 기차는 밤을 새워 달리고 달린다. 거대하고 푸르른 하늘과 그에 맞닿아 있는 산, 수백 개의 호수를 지나며 밴쿠버와 토론토 사이의 도시인 재스퍼, 에드먼턴, 사스카툰, 위니펙에 차례로 정차하고 사람들을 내려주고 또 태운다. 캐나디안 호의 백미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식사하는 호텔 수준의 정찬뿐만 아니라, 식사마다 다른 승객과 자리를 같이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데 있다. 일생에 꼭 한 번 해봐야 할 여행 버킷리스트에 지금, 적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