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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물의 ‘아나바다’ 운동이 필요하다.
최 종 수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 /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정부는 지난 3월 13일, 3월부터 5월까지 전국 가뭄 상황에 대한 예·경보를 발표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남부 일부 지역의 가뭄은 4월 이후나 되어야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한다. 가뭄이 심한 호남지방의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50% 대로 평년에 비해 80%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남부지방 가뭄 극복을 위해 부처별로 다양한 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모내기 철 원활한 용수공급을 위하여 저수율이 낮은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저수지 물 채우기, 하천․배수로 물 가두기, 하천유지용수 감량 등을 통해 가용 용수를 확보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상습 물 부족을 겪고 있는 지역에 인근 하천과 댐에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도수로를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부는 산업단지 내 일부 기업의 공장 정비를 상반기로 앞당겨 모내기 철 용수 사용을 줄이는 방안을 유도하기로 했다. 행안부는 정부 부처별 가뭄 대책의 추진상황을 지속 점검․관리하는 한편 재난 안전 특별교부세 집행을 주기적으로 점검해 가뭄 대책이 현장에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관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뭄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물관리 주무부에서인 환경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환경부가 물관리 주관부서이지만 적절한 물관리를 위해서는 다양한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정부 부처별 가뭄 대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물을 아껴 쓰고 나눠 쓰자는 것이다.
‘아나바다 운동’을 기억하는 국민이 많을 듯하다. 과거 IMF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등장했던 운동으로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자'의 준말이다. 아나바다 운동으로 경제위기를 벗어났던 경험과 지혜를 물관리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물 이용의 아나바다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가 제시한 아껴 쓰고 나누어 쓰자는 대책에 바꿔쓰고 다시 쓰는 방안이 더해져야 한다. 물을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접근은 물의 재이용으로 정의할 수 있다.
물을 재이용하기 위해서는 수원과 사용 용도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재화의 수요와 공급은 균형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수요가 있어야 양질의 공급이 창출되고, 안정적인 공급이 전제되어야 수요가 생긴다. 재이용할 수 있는 수원은 빗물, 하수처리수1), 유출 지하수2) 등 다양하지만 필자는 하수처리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수량과 수질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4,281개의 하수처리장이 있으며 이 중 1일 처리 규모 500t 이상의 처리장은 700여 개에 이른다. 매일 500t 이상의 물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수원이 전국에 700개나 존재하는 셈이다. 전국 하수처리장에서 배출되는 하수량은 연간 74억 t으로 소양댐 저수량의 2.5배나 되지만 재이용되는 비율은 15% 수준에 그친다. 그뿐만 아니라 사용 용도도 하수처리장 내 청소 등으로 사용되는 용수(46%)와 하천유지용수(39%)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 재이용을 통해 상수 사용량을 절감하고자 하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하수처리수가 안정적인 수량과 수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한적인 용도로만 이용되는 이유는 하수를 처리했다는 선입견으로 수질에 대해 막연한 불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처리기술의 발달로 수질이 양호해지면서 공업용수로 재이용되는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수처리수 재이용이 활성화되면 물 부족에 대한 가시적인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질을 고려할 때 하수처리수는 공업용수와 농업용수, 그리고 생활용수인 청소․화장실 용수로 활용이 가능하다. 하수처리장은 도시 가까이 있고 수량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다량의 물이 필요한 공업용수와 연계하면 지자체로서는 용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기업으로서는 안정적인 용수원을 확보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내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하루 47만 t의 처리수를 반도체 공장의 공업용수로 공급하기 위한 협약이 체결된 사례가 있어 하수처리수의 공업용수 활용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하수처리수를 농업용수로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하수처리수는 수량과 수질이 일정할 뿐만 아니라, 처리수 내에 인, 질소의 비료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시비량을 줄여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그간 용수의 대부분을 상수도에 의존해 왔다. 생활용수, 공업용수뿐만 아니라, 청소·화장실 용수, 조경용수도 상수도를 사용한다. 한 가지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다양성 부족은 치명적인 안정성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 상수원 수량이 부족하거나 급수 중단 사고가 발생하면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야기될 수 있다.
정부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가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부가 제시한 대책이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가뭄 대책에 참여하는 부처별 이해가 상이하고 물관리가 최우선 논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별 이해를 조율하고 제도 개선을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부처 간 입장 차가 첨예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부처가 이를 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정부 부처 간 이해 조정과 제도 개선을 검토하는 기구로 국가물관리위원회를 제안한다. 위원회는 물관리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한 기구이다. 위원회 설치의 근거법인 물 관리기본법 제22조에는 위원회가 중앙행정기관이나 광역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물 분쟁을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현행 제도로 위원회가 부처별 이해를 조율하고 제도 개선을 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이맘때면 연례행사처럼 가뭄에 시달린다. 최근 기후변화로 그 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IMF의 경제위기를 아나바다 운동의 저력으로 이겨냈듯이, 물 부족 위기도 물에 대한 아나바다 운동으로 풀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 하수처리수 : 「하수도법」 제2조제9호에 따른 공공하수처리시설에서 처리된 물
2) 유출지하수 : 지하시설물 또는 건축물의 공사 등 인위적인 행위로 인하여 자연히 흘러나오는 지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