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도시

물 만난 도시: 봄이 피는 곳, 전남 구례/또 꽃이 피네요, 떠나고 싶지 않게  따뜻한 햇살과 순한 바람만 있다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계절 봄이다. 그토록 기다린 봄을 만나기 위해 남도로 떠났다. 남도 중에서도 봄빛이 가장 먼저 깃들어 오래 머문다는 섬진강 강가로. 봄날의 섬진강은 천지간의 햇살을 그러모아 꽃으로 싹으로 툭툭 피워내는 곳이다. 섬진강 중류, 지리산 자락에 있는 구례도 그렇게 피어 어디든 꽃 같은 자리다. 노란 산수유꽃으로 고혹적인 매화로 샛노란 수선화로 화사한 벚꽃으로 피어 봄 내 꽃이지 않은 순간이 없는 곳, 구례. 그곳에서 피어 환한 것들을 여럿 만나고 돌아왔다. 글 이시목(여행작가)‧사진 이시목, 구례군청

구례는 큰 산과 큰 강을 품은 도시다. 백두대간의 장엄한 기세가 끝을 맺는 지리산이 구례의 지붕이고,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크고 긴 섬진강이 구례를 관통한다. 큰 산 아래 깊은 골에는 화엄사를 비롯한 연곡사·천은사 같은 고찰이 깃들었고, 큰 강가 너른 들녘엔 마을들이 옹기종기 들어섰다. 그 산과 강 사이에는 여러 가닥의 지천이 있고, 크고 작은 구릉들도 있다.

그래서일까. 구례의 봄은 섬진강의 지류인 이들 지천을 연어처럼 거슬러 오르며 지리산에 닿는다. 때로는 폭죽처럼 꽃으로 터지며, 가끔은 물풀 같은 연둣빛 새순으로 피어나며.

물 만난 도시:구례, 지리산 자락에서 만나는 노란 꽃 무리/구례의 봄을 상징하는 산수유꽃부터 만나러 간다. 목적지는 지리산 만복대 기슭, 서시천 상류에 있는 상위마을이다.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산동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상위마을은, 마을 내에 자생하는 산수유나무가 3만여 그루에 달하는 곳이다. 덕분에 봄이면 마을 전체가 노란 꽃구름에 휩싸인 듯 샛노래진다.

관람 포인트는 마을 내에 있는 ‘S자형’ 돌담길. 구불구불하게 둘러쳐진 돌담 위로 수령 300~400년 된 산수유 고목들이 노란 꽃터널을 이뤄 이채롭다.

지리산 만복대에서 흘러내린 계곡가의 산수유꽃도 눈부시다. 햇살 좋은 날 물가에 서면, 맑은 물 위로 하늘하늘 흐르는 산수유꽃의 샛노란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톡톡 튀는 꽃술엔 달콤한 향이 가득하고, 물빛이 반사돼 반짝일 때마다 꽃잎엔 ‘비구니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서 자라나는 설움’ 마냥 애틋한 빛깔의 눈물이 선명하다.

산수유마을 인근에 있는 지리산치즈랜드도 노란 꽃밭으로 유명하다. 젖소를 기르는 목장의 일부를 개방해 관광지화 한 곳으로, 최근 ‘SNS 핫플’로 훅 떴다. 꽃밭의 주인공은 수선화다. 구만저수지 변 낮은 구릉을 따라 조성된 초지 일부에 수선화 수십 만 주가 심어져 있어, 노란 들판인 듯 싱그럽다. 만개 시기는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기온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게 4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목장 둘레를 따라 난 산책로도 걸어보자. 구릉 정상에서 푸른 저수지와 싱그러운 초지, 예쁜 출렁다리와 수선화가 더해진 풍경과 조우할 수 있다. 예약하면 치즈랜드 안에 있는 체험장에서 치즈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물 만난 도시:구례, 수선화로 유명한 지리산치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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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산수유마을
구례엔 상위마을 외에도 산수유꽃이 군락을 이룬 곳이 많다. 계척마을과 현천마을, 반곡마을 등이 눈에 띈다. 계척마을은 1천 년 전에 중국 산둥성의 처녀가 이 마을로 시집을 오면서 가져왔다는 산수유 시목이 있는 곳이고, 현천마을은 구례의 다른 산수유 군락지보다 찾는 이가 적어 비교적 호젓하게 산수유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상위마을 가까이에 있는 반곡마을은 너럭바위가 즐비한 서시천을 끼고 있어 좀 더 시원한 풍광의 산수유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 특히 반곡마을엔 서시천을 따라 데크가 놓인 ‘꽃담길(1코스)’이 있어, 꽃이 담이고 서시천이 벽인 풍경 안을 오래 거닐 수 있어 좋다.

물 만난 도시:구례, 계척마을(산수유 시목지) / 현천마을 / 반곡마을

물 만난 도시:구례, 꽃-등불 환하게 켠 지리산의 절집들  봄의 도시 구례에서는 절집도 화려한 꽃밭이다. 지리산 너른 품 안에 폭 안기듯 자리한 화엄사와 천은사, 연곡사가 대표적이다. 구례 답사 여행의 1번지로 꼽히는 화엄사는 그 색 너무 짙어 ‘흑매’라고도 불리는 홍매화가 피는 곳이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인 천은사는 홍매화‧백매화 듬성듬성 피어 은은한 향 날리는 ‘구례의 핫플’이다. 피아골 입구에 있는 연곡사도 이 봄엔 빼놓기 아깝다. 산수유꽃을 비롯한 매화 등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소박한 듯 화려한 꽃밭을 이룬다.홍매화로 유명한 화엄사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인 천은사 / 연곡사의 봄 풍경

이 중 가장 유명한 꽃밭은 화엄사다. 장중한 규모와 천장의 상승감이 대단한 각황전부터 사사자삼층석탑·석등 등 볼거리가 많지만, 이맘땐 아무래도 홍매화 검붉게 핀 자리부터 찾는 게 순서다. 수령 300여 년 된 홍매화(3월 하순~4월 초순 만개)는 우리나라 4대 매화 중 한 그루에 꼽히는 것으로, 그 꽃 빛이 짙어 등불을 켠 듯 환하다.

여기에 동백나무를 비롯한 백매 나무와 벚나무 고목에서까지 너른 꽃그늘이 푸지게 내리니 화엄사의 봄날은 참 고혹적이다. 화엄사에서는 도보 20~30분 거리에 있는 산내 암자들도 찾아보길 권한다. 길상암에서는 들매화(천연기념물 485호)가 볼 만하고, 구층암에서는 죽은 모과나무로 기둥을 세운 건물이 인상 깊다.

물 만난 도시:구례,봄을 맞은 화엄사

물 만난 도시:구례, 섬진강에서 봄을 맞는 다섯 가지 방법 무릇 봄빛은 물가에서 더 이르게 돋는 법이다. 섬진강이 강폭을 한층 넓히는 구례는 이르게 돋아 봄빛 흥건한 섬진강을 다채로운 색감과 방법으로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섬진강을 넓고 길게 조망할 수 있는 암자(사성암)가 있고, 강을 옆구리에 끼고 걸을 수 있는 대숲(섬진강 대나무 숲길)과 제방(간전면 금내리 일대)이 있으며, 홍매화 그득해 눈이 황홀해지는 공원(섬진강 수달생태공원)도 있다. 연한 분홍빛의 벚꽃이 팝콘처럼 터져 터널을 이루는 길(섬진강 벚꽃길)도 섬진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일부 벚나무들은 강 쪽으로 보기 좋게 늘어져 ‘인증샷’ 찍기에도 좋다. 사성암

사성암부터 찾는다. 오산 절벽 위에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사성암은 드넓은 구례 들녘과 맑은 섬진강 물줄기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 원효대사, 진각국사, 도선국사가 차례로 찾아와 수행했을 만큼 기운이 좋은 절집으로도 유명하다.

사성암이 섬진강 조망대라면, ‘섬진강 대나무 숲길’과 ‘섬진강 제방길’은 섬진강 물길을 따라 걸으며 힐링하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구례읍 원방리 섬진강 변에 있는 ‘섬진강 대나무 숲길’(왕복 1.7km)은 쭉쭉 뻗은 대나무 사이에서 어른대는 섬진강의 윤슬을 보며 걸을 수 있어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낮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는 맛이 좋고, 밤엔 숲을 빛내는 조명들로 눈이 황홀하다.

물 만난 도시:구례,섬진강 대나무 숲길

구례에서 하동과 광양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벚꽃길’도 봄날의 선물 같다. 동해마을 앞에서부터 시작되는 ‘동해벚꽃로’와 구례군 문척~간전 간 지방도 861호선 도로가 찾기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인근에 있는 하동 화개의 십리벚꽃길보다 찾는 이가 적어 보다 한적하게 벚꽃길을 걷거나 달릴 수 있다. 문척면 죽마리와 구례읍 신월리를 잇는 두꺼비 다리(보행교) 가까이에 벚꽃과 섬진강 풍광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주차장도 있다.

물 만난 도시:구례, 섬진강 동해벚꽃로 /  벚꽃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구례군 문척~간전 간 지방도 861호선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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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수제비
구례의 맛, 다슬기 수제비
큰 산과 큰 강을 끼고 앉은 곳답게 구례의 음식들은 산과 들과 강을 고루 아우른다. 산채부터 산닭, 은어, 참게, 다슬기까지 주목받는 식재료도 많다. 이중 섬진강 맑은 물빛을 그대로 담아낸 한 그릇으로 인기 있는 음식이 다슬기 수제비다. 쫄깃한 수제비와 오동통한 다슬기가 만나 구수하고 깊은 국물 맛을 낸다. ‘물속의 웅담’이라 불릴 만큼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효능이 좋은 다슬기가 듬뿍 들어가 해장음식으로도 인기 있다. 무침과 탕·전과 함께 맛볼 수 있으며, 구례읍내와 토지면 일대에 다슬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이 여러 곳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