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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 시대에서의 물관리
전 만 식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 /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지방의 균형발전을 주요 목적으로 분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분권의 개념은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정부와 나누고 그 권한을 지방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성 그리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수도, 하수도, 하천관리 등 물 분야의 분권은 지역별 재정자립도의 차이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 분권의 최대 목표인 균형발전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상수도 관련 사업으로 모든 국민은 동등한 수도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방상수도는 사업 주체가 지자체이고 재정력에 따라 수도사업의 건전성이 우려된다. 우리는 이미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하였고 인구감소 시대에 접어들었다. 많은 비수도권 지역은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물론 청년인구의 이동으로 인구소멸지역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어촌 생활용수 개발, 소규모수도시설개량, 식수 전용 저수지 확충 등이 2020년부터 지방이양 사업으로 전환되어 취약지역의 악순환이 예상된다.
▲ 2021년 시도별 상수도 총괄 원가 및 급수 인구당 관거길이
상수도의 생산비용은 규모의 경제성 논리로 인구밀도가 적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8개 광역시의 1인당 관거(도수·송수·배수·급수) 길이는 2.7m이나, 9개 도는 8.9m로 3배 이상 많다. 이러한 현상은 시·군·구 및 읍·면·동에 따라 더욱 큰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물관리에 있어 형평성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한다. 인구밀도가 낮은 지자체를 대상으로 수도사업의 운영 효율화를 거론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수도사업의 경영평가에서도 요금 현실화율, 급수 보급률, 노후관 비율 등만 요구하지 않았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두 번째로 하천관리에 대한 형평성 문제이다. 지방하천 및 소하천은 물이 흐르는 시발점이다. 현재의 하천 사업이 치수 중심이기는 하지만, 하천이 건강해야 물도 건강해진다. 우리나라에는 3,844개의 지방하천과 22,442개의 소하천이 있다. 2020년부터 지방하천 정비사업, 생태하천 복원사업 및 소하천 정비사업이 지방이양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국내의 물 관련 법제에서는 대부분 법정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하천법과 소하천정비법도 예외는 아니어서 10년마다 정비 중심의 법정계획 수립과 5년마다 타당성을 검토하여 변경해야 한다. 많은 하천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는 계획 수립 비용조차도 부담이 되는 실정에서 계획에 따른 사업 비용의 조달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 대응, 물 환경의 자연성 회복 등의 국가 물관리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겠는지 검토되어야 한다.
▲ 2020년 시도별 하천 수 및 제방의 정비·신설 필요량
세 번째는 하수처리 비용에 대한 근본적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2000년 국내의 하수종말처리시설은 172개로 70.5%의 하수도 보급률에서 2020년에는 공공하수처리시설 4,281개(500㎥/일 이상 698개, 미만 3,583)로 증가하여 공공하수도 보급률이 94.5%나 되고 있다.
공공하수처리시설의 수가 증가한 것은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주로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하수처리 부문도 규모의 경제성으로 1㎥당 처리비용이 시도별 7.9~33.3만 원/년·인의 범위로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즉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 재정이 열악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처리비용을 지불하는 실정이다. 지역에 따라 수계관리기금으로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재정적으로 부담이 된다.
▲ 2020년도 시도별 하수처리 비용 및 처리시설당 인구수
분권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지방세 확충 방안으로 지방소비세율을 인상하고 있으나, 지자체에서는 체감하지 못하며 회의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외에도 2026년까지 지방이양 사업을 일부 보전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한시적 지원이고 한정된 예산을 140여 부문의 지방이양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물 관련 사업에의 원활한 투자가 가능하겠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관리기본법에서 제시하는 건전한 물순환, 통합물관리, 기후변화 대응, 비용부담 등의 12대 기본원칙이 지켜질 수 있는 구조인지 검토되어야 한다. 분권이라는 명목으로 물 이용·관리를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정책은 우리의 통합물관리 정책에 역행된다. 분권의 목표인 균형발전에도 역행된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인데, 제정 당시 담지 못했던 물관리기본법의 취수부담금 제도 및 유역관리기금 부문의 법률 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이는 모든 국민이 동등한 비용으로 물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기반이 될 것이며, 물관리기본법의 기본원칙을 실행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