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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관문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도심 곳곳이 물길로 연결된 ‘운하의 도시’다.
운하는 말 그대로 인공적인 물길인데, 내륙 깊숙이 배가 다니고 배수와 용수를 위해 사람이 만든 수로(水路)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암스테르담 운하는 바다에 던져진 그물처럼, 혹은 몸속 동맥처럼 촘촘하게 도시를 드나든다.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약 165개로 길이도 수천 km에 달한다. 어째서 암스테르담에 ‘운하’가 만들어진 걸까.
▲ 암스테르담 운하
네덜란드는 그 이름이 말하듯 ‘낮은(Nether)땅(land)’, 해수면 아래의 땅이었다. 저지대다 보니 바다나 강의 범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댐을 쌓고 풍차를 돌려 바닷물을 밖으로 빼내어 살아갈 땅을 마련했다. 지금 네덜란드 국토의 1/4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땅이다. ‘간척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다.
도시 이름이 ‘담(dam)’으로 끝나는 것도 강둑을 따라 건설된 댐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이 생겨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암스테르담도 암스텔강을 가로지르는 댐이라는 뜻이다.
암스테르담은 17세기 초, 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상인들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자 대대적인 도시 확장공사에 돌입했다. 암스테르담 서쪽으로 크게 3개의 물길을 내고, 거주지와 도시 가장자리에 방벽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운하 여행하는 세 개의 주요 운하, 신사(Herengracht), 왕자(Herengracht), 황제(Herengracht) 운하가 이때 만들어졌다. gracht는 네덜란드어로 운하라는 뜻이다.
운하를 따라 지어진 집을 보면 정면이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당시 운하 주변 주택의 소유주는 부유한 상인이거나 전문직의 사회 중산층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강 뷰 맛집’인 이곳은 누구라도 탐낼 곳. 1인당 지을 수 있는 땅을 한정해 배분했기에 벽과 벽이 서로 맞닿은 타운하우스 형식으로 건설됐다. 모래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지반 때문에 건축가들은 통나무를 점토 지반에 심었는데, 땅속 깊숙이 넣으려면 40명의 장정이 1시간 넘게 매달려야 겨우 나무 하나를 박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암스테르담 도시 전체에 1,100만 개 나무 기둥이 박혀있다는 사실을 곱씹으면 놀라울 따름이다.
집이 좁고 길쭉한 형태인 것도 공간의 효율성을 최대한 살림과 동시에 도로에 면한 면적에 비례해 세금을 매겼기 때문.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뒤편에 넓은 정원이 있다.
▲ 암스테르담 운하 주변에는 정면이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자리하고 있다.
크루즈가 물살을 가를 때, 역사를 되짚으며 도시를 여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좁은 수로에 수많은 배들이 다니는데도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운전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르네상스풍의 좁은 집들과 물 위에 떠 있는 수상가옥도 신기한 풍경이다.
암스테르담 운하망은 1665년 당시 640km로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수상 교통망을 가졌고, 현재는 총연장 6,800km에 달한다. 홍수 방지시설의 길이도 무려 3,500km에 이른다. ‘지구는 신이 창조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창조했다’라는 유명한 말은 그들의 자부심을 잘 드러낸다.
생존을 위해 물과 싸운 역사는 제방을 쌓고, 갑문을 만들고, 수위를 조절하며, 수로를 연결하는 등 자연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삶의 방식을 터득한 기술 발달로 이어진 것이다.
볕이 따스한 가을에 운하를 따라 타박타박 걸어 봐도 좋다. 가장 오래되고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싱겔(Singel)은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에서 시작해 암스텔강과 만나는 문트 광장까지 이어진다. 운하를 따라 산책하는 것만으로 중세 네덜란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헤렌그라흐트는 1590년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상인의 집이 위치한다. 운하 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하를 꼽으라면 프린센그라흐트다. 역사 유적지, 박물관, 카페 등의 명소로 둘러싸여 있어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운하 폭이 31m에 달하는 카이저스그라흐트는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넓은 운하다. 500개가 넘는 국가 유산이 자리해 네덜란드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 운하를 따라 산책하다 보면 길거리 공연과 마켓, 박물관 등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암스테르담 운하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 직접 물과 맞닿는 것이다.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운하 크루즈 투어를 꿈꾼다. 물 위에서 바라본 도시 느낌은 색다르다.
투어 프로그램에 따라 와인과 치즈도 맛보거나 카약과 패들보드 등의 액티비티도 가능하다. 해 질 녘 운하 가장자리로 보이는 암스테르담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노를 젓는 것도 암스테르담 여행의 버킷리스트다.
따르릉따르릉, 어디를 가도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천국이다. 인도보다 자전거도로가 넓은 경우도 부지기수. 보급된 자전거 수는 1,800만여 대로 인구 1인당 1.1대란다. 사람보다 자전거가 많은 셈이다.
또, 네덜란드 하면 떠올리는 치즈, 풍차, 튤립도 운하를 따라 발견할 수 있다. 한 발짝 더 들어가면 나치의 탄압을 일기로 기록한 안네 프랑크가 거처했던 집, 145년 전통의 하이네켄 맥주, 화가 반 고흐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렇다.
▲ 자전거 천국이기도 한 암스테르담에서 운하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풍경과 문화를 만날 수 있다.
노랗고 둥근 원반 모양의 하우다 치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운하를 이용해 유제품으로 만든 치즈를 팔러 다니기 시작했고 17세기에는 남미까지 치즈를 수출했다고 한다. 2000년 전 치즈를 만들던 돌그릇이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네덜란드 치즈다.
하우다 치즈의 원산지는 네덜란드 남쪽 지방에 있는 ‘하우다’(Gouda)로, ‘G’가 ‘ㅎ’으로 소리 나는 네덜란드식 발음 때문에 하우다 치즈라 부르는데 영어식으로 고다 치즈라 부르기도 한다. 70% 이상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는 세계 최대 치즈 수출국에서 치즈의 풍미를 제대로 느껴보는 건 어떨까.
▲ (왼쪽부터) 치즈 나르는 모습을 재현한 샌드아트 -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우다 치즈 역시 운하를 이용해 팔기 시작했다.
▲ 오렌지색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킹스데이 축제를 뜨겁게 달군다.